무술년 새해, 저녁에 혼자 걷은 시간을 때때로 갖자!

황금개띠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저런 소망으로 내일을 다짐한다. 변화와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나또한 소중한 꿈을 담은 작은 다짐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혼자 걷는 시간을 늘리는 거다. 그 동안 틈 날 때마다 자전거도 타고 계절과 시간을 거슬러 가끔 걸었다. 하루를 걷는다는 것은 그날의 시작과 끝을 회상하는 일이기도 하고 다가올 시간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저녁에 걷는 게 좋다. 특히 겨울저녁을 걷는 것이 좋다. 쓸쓸한 시간을 걸어 올라가다보면 운 좋게 또다른 나를 발견할 때도 있다. 그 즐거움에 순전히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하는 저녁을 걷는 시간이 허락되는 한, 매일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덤으로 저녁바람까지 불어오면 내 안으로 걸어들어 가는 또 다른 한번 더 나를 발견한다. 가늘게 불어오는 바람이 작은 구멍을 통과해서 마음의 어느 지점에서 멈춘다. 기억나지 않은 잔상들, 애써 기억할 필요 없는 잡다한 시간들이 그 밑바닥에 화석처럼 고여 있다. 해가 지는 저녁을 걷다보면 쓸 때 없는 시간의 기억들이 스물 스물 기어 나온다. 하나둘 지워 나가지만 그것들이 언제 멸종할지 알 수 없다. 쓸모없는 기억들이 살아지고 희미한 흉터로 남을 때까지 이 일은 습관적으로 반복될지 모른다.

어두워져 가는 저녁에 걷게 되면 시야가 지극히 좁아진다. 가로등 불빛이 내가 나아가는 지점을 가리키는 유일한 길동무가 된다. 신기하게 같은 길을 걸어도 매일 느껴지는 온도가 다르다. 발끝에 느껴지는 촉감에서 머리끝에 스쳐 지나는 알싸한 느낌까지 모두 다르다. 오감을 자극해 내는 마음의 온도, 감각의 온도도 희한하게 다르다. 그 뭐랄까 딱히 설명하게 힘든 느낌에 중독되면 저녁에 걸을 수밖에 없다. 빗소리에 걷고, 눈 내리는 풍경에 걷고, 바람소리에 걷고, 보일 듯 말 듯 빛나는 별들의 설레임과 은은한 달빛의 포근함에 반해 또 걷게 된다. 매일 걷는다는 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유 없이 걷는 시간을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보물을 찾는 소소한 즐거움도 준다. 그 소중한 보물을 찾으려면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틈을 주어야 한다. 매일 멈춰 서서 소소한 자극에 몸과 마음을 내 맡기는 자유를 줘야 한다. 저녁을 걷는 것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사색의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오늘 나를 옥죈 시간의 사슬 안에서 묻은 마음의 떼를 닦아내는 일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나를 내 팽계치지 말고 새해부터 저녁에 혼자 걷는 시간을 때때로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