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다음의 두 대화를 보시죠.

“오빠~ 밖에 눈이 와!”

오빠 “정말? 오빠는 일하느라 보지도 못했네. 눈 오는데 우리 만날까?”

“오빠 바쁘다며, 괜찮겠어?”

오빠 “아무리 바빠도 이렇게 예쁘게 눈이 오는데 만나야지~”

저녁 6시, 서울 광화문에서 오빠야를 만났어요.

오빠 “뭐 먹고 싶어? 눈도 오는데 우리 맛있는 거 먹자.”

“음······. 그럼 오랜만에 분위기 있게 파스타 먹을까?”

오빠 “파스타 좋지~ 오빠가 진짜 맛있는 가게 알아. 가자.”

진짜 맛있는 파스타 가게를 향해 두 손 꼭 붙잡고 신나게 걷고 있는데,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아~ 맛있겠다.”

개미도 듣기 어려운 나의 목소리를 오빠야는 알아듣습니다.

오빠 “떡볶이 먹고 싶어?”

“어? 아니~ 그냥 맛있겠다고······.”

오빠 “먹자~ 마침 오빠도 먹고 싶었어. 1인분만 먹고 파스타 먹으면 되지~”

결혼 10년 후.

“여보~ 밖에 눈 온다~”

오빠 “할일이 그렇게 없냐? 나는 지금 바빠 죽겠는데······. 어휴~ 퇴근 길 또 엄청 막히겠네. 근데 눈 온다고 전화한 거야?”

“응~”

오빠 “끊어! 나 지금 바빠.”

구겨진 자존심 다려 가며 10년 전 그날처럼 저녁 6시, 서울 광화문에서 만나 그 파스타 가게를 향해 나란히 한 줄 기차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어디선가 떡볶이 냄새가 몰려옵니다.

“아~ 맛있겠다······.”

내 안의 개미도 10년쯤 자라니 소리가 많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여보~ 우리 떡볶이 1인분만 먹고 갈까?”

오빠 “당신은 그게 문제야~ 음식을 보면 다 먹어야 직성이 풀리냐? 그리고 맨날 다이어트 한다고 돈 쓰고! 파스타나 먹어.”

이쯤 되면 파스타도 먹기 싫어지고, 옆에 있는 이 남자는 더 싫어집니다.

‘알아차림’

상대의 욕구를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기술입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결실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를 보시죠.

아들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이거 밖에 붙어 있던데요. 치킨 새로 나왔나 봐요.”

엄마 “버려~ 엄마가 그런 거 뜯어오지 말랬지? 다 쓰레기야. 경비실에 다시 단단히 일러야겠네. 붙이지 못하도록.”

아들이 뜯어온 전단을 버리는 순간, 아들의 마음도 함께 버려지지 않을까요?

아들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이거 밖에 붙어 있던데요. 치킨 새로 나왔나 봐요.”

엄마 “어디 치킨인데?”

아들 “BBX요~”

엄마 “우리 아들 새로 나온 치킨 맛이 궁금하시군요?”

적극적인 도움까지 가지 않고 욕구를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기분은 괜찮습니다.

엄마 “그런데 우리 치킨 먹은 지 일주일도 안 됐네?”

아들 “지금 먹자는 건 아니에요~”

엄마 “그래? 그럼 냉장고에 잘 붙여놔. 다음에 그 집에서 치킨 시켜 먹자. 맛있어 보이네~”

우리에겐 해결하고 싶고, 해결해야만 하는 욕구들이 있습니다.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감정이 불편해지고, 불편한 감정은 말로,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다시 말해 모든 말과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거지요.

‘마트 앞에서 드러누워 떼를 쓰는 아이’, ‘동생을 몰래 꼬집는 등의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아이’, ‘거짓말을 하는 아이’, ‘학교에 가기 싫다며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찾는 아이’, ‘쉽게 분노하는 아이’ 등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만 알아도 우리는 아이들과 좀 더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욕구 알아채기

이번호에는 욕구를 알아차리는 것부터 다루어보겠습니다. 우선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욕구가 무엇인지 적어보고, 표현해보세요.

엄마의 경우 ‘휴식이 필요해’, ‘우리 집에 질서가 있었으면 좋겠어’,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아들(딸)에게 인정받고 싶어’ 등 아주 사소한 것부터 생각나는 대로 적고 표현해보세요.

말하기의 기본은 하고 싶은 말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즉, 나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인데 우리는 비난, 판단, 비교, 충고, 합리화 등 우리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지요. 왜일까요?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입니다.

“엄마도 힘들다고 몇 번을 말하니? 저리 가서 너희들끼리 놀아. 엄마가 친구야?”

“야! 집이 이게 뭐야. 엄마가 청소부니? 내가 너희들 때문에 못살아.”

“엄마 인생은 완전히 망쳤어.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멋지게 사는데······.”

“엄마가 우습니? 다른 집 애들은 엄마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좀 보고 배워.”

이런 방법으로는 말하고자 하는 의도로 전혀 전달되지 않아 원하는 것을 절대 얻을 수 없습니다. 나의 욕구를 정확히 인식하고, 표현하는 부모가 아이들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도와줄 수 있습니다. ‘주고도 모자람이 없는지 살피는 마음’ 바로 엄마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하나도 버려지지 않고 우리 아이들에게 잘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