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시각화

왜 미고에서 수학인가?

조소과 아이들이 교무실에 찾아와서 각도기를 빌릴 수 있느냐고 묻는다. ‘수학 선생님’이니 각도기 하나쯤은 갖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교육과정 상 각도기는 초등과정 이후로 쓰지 않는다. 각도기로 측정한 각의 크기가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은 둘째치더라도, 중등과정에서는 단순히 각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보다는 더 고차원적인 것을 다루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각도기가 없어 아이들에게 각도기가 무슨 일에 필요하냐고 되물었다. 직각삼각형의 높이가 밑변의 길이의 2배일 때, 밑변과 빗변이 이루는 각의 크기를 측정하길 원한다고 했다.

이러한 작업은 각도기가 없어도 중학교 3학년 과정의 ‘삼각비’를 알면 해결할 수 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삼각비의 표’를 보여주며 원리를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니 완벽히 이해하면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실생활과 동떨어진 과목으로만 생각했던 수학이 이렇게 이용된다니!’ 그 짧은 순간에 아이들은 수학을 배우는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찾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비록 작은 사건이었지만 미술 학교에서 수학의 존재 이유를 찾은 것 같아 뿌듯했고 수학 교사로서 앞으로의 사명감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8년부터 전국 초·중·고에서 코딩(Coding) 교육을 의무화한다고 한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 데이터, 모바일 등의 첨단 기술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단순한 측정 또는 계산(각도기)을 위해 수학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측정 또는 계산을 보다 정밀하고 세세하게 할 수 있는 논리적인 구조를 만들고 다듬기 위해(삼각비) 수학이 필요한 것이다.

코딩은 이러한 의미에서 후자의 수학 쪽에 가깝다. 앞으로 펼쳐질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 더욱이 미술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수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지 수학

우선 나는 아이들의 장점과 수학을 배우는 과정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서울미술고의 아이들은 시각적인 이미지에 익숙하고 또 그것을 다루는 데 능숙하다. 또한 인문계 일반고의 학생들에 비해 마인드가 열려있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며 자유분방하다.

수학은 개념 설명에서 문제 풀이로 연결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어있다. 문제는 텍스트다. 개념을 새로 배울 때 형식이 문자와 기호 위주이고 그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아이들의 이해가 부족했다.

그래서 수업의 도입부를 구성할 때 학생들의 흥미와 집중을 일으킬 수 있으면서도 개념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진 또는 영상을 찾거나 편집하는 데에, 즉 ‘수학의 시각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다음은 2017학년도 1학기 2학년 미적분Ⅰ 수업 도입부를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구성한 예시이다.

수업의 연장 - 거꾸로 수업

전통적인 의미의 거꾸로 수업과는 거리가 있지만 스스로 ‘거꾸로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SNS를 이용하여 수업 시간에 미흡했던 부분을 동영상 강의로 찍어 올리면, 학생들은 그 동영상을 보고 생긴 의문 또는 문제 풀이에서 생긴 질문들을 댓글로 올린다. 그러면 다시 한번의 피드백을 통해 자연스럽게 여러 번 복습하는 효과를 얻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SNS 이전 세대 학생들의 질문과 답변은 특정 학생과 교사만 공유할 수 있던 것에 비해 SNS를 통한 질문과 답변은 공개적이고 파급력이 크다. 비슷한 의문을 다른 학생의 글을 통해 해결할 수 있고, 교사뿐 아니라 학생이 답하여 온라인에서 공동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동안 교무실 또는 교실에서만 이루어졌던 질문과 답변이 어느 곳에서나 어느 때에나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승엽 서울미술고 수학교사는 보충강의로 동영상을 촬영해 개인 블로그에 게시하여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SNS를 통한 거꾸로 수업은 다른 학생들의 고민이나 힘들어하는 부분을 나눌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기록을 보존하기에도 쉽다. 강의, 질문과 답변, 피드백 등의 모든 게시물 자체가 기록으로 누적되어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이렇듯 교실 수업의 연장으로서 SNS가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있고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콘텐츠와 구성으로 발전할 것을 기대한다.

맺으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업을 돌이켜 보면 미흡한 점이 많다. 대학 진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수학 성적이 필요한 학생도, 수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학생도 수업의 도입 부분에는 흥미를 느끼고 전보다 개념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수업 내용이 전개되거나, 문제 풀이를 할 때 이내 집중력을 잃는 모습을 보았다. 개념과 문제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 끊임없이 시각화 과정을 반복하여야 하고, 도입과 전개의 징검다리 역할을 교사가 해내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브루타(Chavruta), 조별 활동 등의 협력 학습을 통해 공동체적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장을 교사가 마련해야 한다.

수학은 위대한 수학자나 천문학자, 공학자들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철 승강장에, 음식에, 러시아 전통 인형에, 예술가의 작품속에, 누군가의 얼굴 속에,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 자물쇠 속에, 어디에나 수학은 숨어 있다.

아이들이 주변에 있는 수학을 스스로 발견하고, 그 수학을 우리의 생활 자체로 인식하도록 하여 궁극적으로는 미래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수학 교사의 역할이자 사명이라 하겠다.

그 옛날 수학 시간에 스쳐 지나갔던 강렬한 이미지와 형상들이 아이들의 뇌리에 남아 먼 훗날 작품의 영감이 되고 예술가적 자질을 이루는 바탕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