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은희 부모교육연구소장

웃어주고, 안아주고, 들어주고, 믿고 기다려주기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사랑하면 이해가 되고,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요. 맞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그런데 왜 이해가 안 되고, 보이지 않는 걸까요? 남녀 간의 사랑을 지켜보면 아름답게 함께 성장하는 커플이 있지만, 싱그럽고 풋풋했던 첫 마음을 잃어버린 채 돌아서는 커플도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함께 성장하기도 하지만, 첫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원수가 되거나 남보다 더 못한 어색한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야”, “다시 태어나면 절대 결혼은 하지 말아야지”라는 의미 없는 말들을 무한 반복하면서요.

무지한 부모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 역시 사춘기를 겪는 중학교 1학년 딸의 시간을 돌려주려고 다음의 네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첫째, 그냥 웃어주었습니다.

딸을 보면 그냥 잔잔한 미소를, 때로는 환한 웃음을 지어주었습니다.

“왜 웃어? 장난해?”

“아니, 그냥, 좋아서~”

“뭐래?”

밥을 먹는 아이를 보며 웃고, 학교 가는 아이를 보며 웃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 예를 들면 비난, 공격, 설득, 판단, 훈계, 강요, 협박 등을 멈추고 그냥 웃어주었습니다.

백화점에 가거나 브랜드가 있는 미용실에 가면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환한 표정과 친절한 말투는 내 존재가 귀하게 대접받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거든요.

살아보니 넘어질 일이 참 많습니다. 그때 환하게 웃어주는 부모가 떠오른다면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지 않을까요?

둘째, 그냥 들어주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의 일을 이야기할 때 그냥 적절한 반응을 보이며 아이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가만히 들어주었습니다.

“헐······.”, “대박!”, “진짜?”, “우와~~~~~~”, “속상했겠다”, “화가 났겠네”, “억울했구나”

엄마가 귀를 열고, 마음을 여니 아이는 굳게 닫힌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들어주는 동안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고, 풀어내며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셋째, 그냥 안아주었습니다.

기질적으로 스킨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딸이었지만 잔다고 인사하는 아이를, 학교 가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더니 엉덩이는 저만치 가 있고, 몸은 마네킹처럼 뻣뻣하더군요.

“왜 이러는데?”

“그냥~”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를 주는 것이 바로 ‘포옹’입니다. 시댁에서 잔뜩 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미처 치우지 못한 설거지를 하는데 남편이 살그머니 내 뒤에서 껴안아줍니다. 옆집 아줌마한테 무시당하고 속상해서 앉아 있는데 남편이 다가와 소리 없이 나를 꼭 안아줍니다.

물론 이런 일은 대한민국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상상을 해보자는 거에요.^^ 기분이 어떨까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넷째, 그냥 믿고 기다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를 채워주려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기대하는 부모가 아니라 기다려주는 부모가 곁에 있다면 아이들은 반드시 자신의 때에 자신만의 꽃을 피울 거라 믿습니다.

마법에 걸리는 교복을 입은 지 1년 정도가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설거지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딸이 제 앞에 앉더니 저를 가만히 쳐다봅니다. 다정다감한 딸도 아니고, 더군다나 지금은 지구인도 아닌 외계인의 모습으로 사는 사춘기 딸이 제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저를 부릅니다.

“엄마~”

“왜?”

“힘들어?”

“아니”

이렇게 말은 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예요.

“엄마~나 때문에 힘들지? 엄마 눈에는 ‘힘들어’라고 쓰여 있는데? 요즘 내가 자꾸 이상하게 행동하니까 엄마 눈에 ‘아파서 힘들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아.”

“아닌데······.”

“엄마, 엄마는 내가 왜 그때 교무실에 갔는지 알아? 거기서 무슨 벌을 받았는지 알아? 왜 아무것도 묻지를 않아?”

“엄마는 네가 왜 교무실에 불려 갔고, 거기에서 무슨 벌을 받았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그 순간 엄마가 널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게 너무나 미안했어. 엄마가 좀 더 다인이를 이해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내가 거길 왜 갔냐면······.”

그렇게 딸의 억울한 이야기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긴 시간 계속 되었습니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그랬구나······.”

이야기를 다 마친 딸이 제게 다가오더니 저를 꼭 안으며 묻더군요.

“엄마, 근데 엄마는 어떻게 알았어? 내가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걸, 내가 사람이 될 걸 어떻게 알았어? 날 어떻게 믿었어?”

“음······ 엄마 딸이니까!”

“엄마, 믿어줘서 기다려줘서 고마워. 이제 잘할게. 공부를 잘한다는 게 아니야. 그냥 생활을 잘 한다는 거지.”

제 딸은 올해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그날 이후로 생활을 잘하는 정다인이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시간을 내어주고, 믿고 기다려주는 정다인이라는 사람이 되었죠.

진짜 부모놀이

무엇을 물려주시겠습니까?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관계 맺는 능력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누군가와 연결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기도 하고, 그 사람을 닮고 싶어 노력하기도 합니다.

기적을 선물하세요. 다른 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웃어주고, 들어주고, 안아주고, 믿고 기다려주면 됩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밉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거지요. 화해하자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춘기의 반항이 고맙기도 하고, 우리에게 포기하지 않고 수시로 기회를 주는 아이들이 고맙기도 합니다. 이렇게 강력하게 반복해서 꼴통짓(?)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요.

대한민국 모든 아이가 사람이 되는 그날을 꿈꾸며 진짜 부모놀이를 제대로 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