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연희 학부모

교육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이용되고 있다

이연희 학부모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에 학생 대표 참여시켜야’

‘경기 자사고·외고 폐지…일제고사 폐지도 공식화’

‘서울시교육청, 새 정부 교육정책 제안, 고교 체제 단순화’

요즘 연일 인터넷을 장식하는 기사의 제목들이다. 여태 정권이 교체될 때 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고 현 정부에 들어서면서도 어김없는 통과의례처럼 행해지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심지어는 교육정책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시점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누가 될 것인가.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우리 아이들, 청소년들일 것이다. 말로는 이렇게들 떠든다.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주역인 청소년들의 행복을 위해 교육이 행해져야한다고. 하지만 거기에 ‘우리 아이들의 행복과 존재 가치를 고려한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은 되물어봐야 할 일이다.

교육의 주체인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우려면 어찌해야할까? 기성세대가, 어른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들과의 대화에서 얻은 깨달음

실은 나도 몇 해 전 소위 말하는 위기청소년을 돌보는 봉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시시때때로 바뀌는 교육정책에 우왕좌왕하며 소문난 학원으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학부모 중 하나였다.

그 당시 한참 사춘기를 보내는 연년생 두 아들과 갈등이 깊었던 차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속내도 알고 봉사도 할 겸 지인의 소개로 어느 작은 청소년 쉼터에 가게 되었다. 청소년 쉼터 아이들의 생활은 내 평생 처음 접해보는 낯선 경험이었다.

일단 첫인상을 묘사해 보자면 조직폭력배를 연상하는 험상궂은 외모에 팔뚝과 다리 등 온몸을 휘감고 있는 문신들,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로 연신 떠들어대는 그 아이들을 봤을 때는 위화감과 위축됨이 들었다. ‘괜히 왔나’라는 후회까지 몰려 왔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내면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아니 바로 내 아이들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행복하기를 바랐고 어른들의 이해를 받기 바랐고 지금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단지 그 방법을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부터 나의 변화도 시작되었다. 내 아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면 내 아이들과 같은 시대를 사는 청소년들을 좀 더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청소년 커리어코치에 도전하였고 그와 관련된 전 공으로 석사과정을 시작하였다.

지금은 고3, 고2 두 아들의 엄마이자 청소년 코칭 전문가로 박사과정을 막 시작한 늦깎이 신입생이다. 일과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서 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바라 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은 생긴 거 같고, 그전에는 하지 않았던 대화도 하게 되면서 알지 못했던 아이들의 마음도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

얼마 전 큰아들과의 대화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요즘 내가 개발하고 있는 학습코칭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큰아들이 엄마의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다.

“엄마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공부하고 프로그램 개발한다며 왜 자꾸 성공에 관해서 얘 기해? 그건 어른들이 생각하고 엄마가 생각하는 성공이잖아. 그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걔네들한테는 물어봤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은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인정받고 원하는 걸 이루는 거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엄마는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고.”

“난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행복해질 거고, 그럼 그게 성공 아냐?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 나의 성공은 아니잖아.”

맞다. 그랬지. 내가 일을 시작하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위함이었는데 초심을 잃어버리고 세상이 이야 기하는,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성공과 행복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을 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을 위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반이 되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 어른들은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이연희 학부모 가족

부모의 바람직한 역할

세계적으로 심리학계에서는 긍정심리학이 대두하고 있다. 심리학자 Linly는 ‘강점’을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고 꾸미지 않은 진정한 자기’로 정의하고 강점 발휘 시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활용하기 때문에 몰입하게 되고 활력이 넘치며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즉, 강점이 삶의 만족을 높이고 진정한 행복으로 갈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강점을 잘 활용하는 데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인간의 강점 발견하기》(Shane J. Lopez, 2011. 학지사)에서는 강점 활용 과정이 나타나기 위해 첫째, 학생들이 지속해서 지지를 받는다고 느껴야 하고, 둘째, 성공 경험을 해야 하며, 셋째, 강점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느낄 수 있어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청소년들에게는 사회적으로 무조건적인 지지가 성공을 이끌게 하고, 이는 다시 강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며, 이것이 선순환되어야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됨을 역설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청소년들이 강점을 잘 활용하게 하기 위해 가장 먼저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사회적 지지’, ‘가 정의 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지지라는 것은 믿지 못해서 하나에서 열까지 쫓아다니며 아이의 인생을 어른이 대신 살아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인생의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고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자신에게 있음을 알려주고 세상을 탐험하면서 결정하고 책임질 때 마음 놓고 탐험할 수 있도록 안전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지지’이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바람직한 지지기반이 되어주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나 또한 여느 극성맞은 엄마들처럼 학교고, 학원이고 쫓아다니며 아이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처럼 하였다.

아이들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순전히 나의 만족감으로 말이다. 그때 아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세상 전부가 부모인 어린 나이 때 부모가 하라고 하니 억지로 따라 하긴 하지만 진정 행복하거나 즐겁지는 않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지금 와서 두 아들은 엄마의 강압적인 교육방식에 너무 숨통이 막혔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썩 바람직한 엄마는 아니었음을 반성한다. 그래서 지금은 선택권을 아이에게 주고 한 발 떨어져 지켜봐 주며 응원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지로 고2인 둘째 아들이 큰아들과 같은 미술을 전공해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옛날의 나였다면 “고 2인데 지금에 와서 전공을 바꾸면 어쩌겠다는 거냐?

늦게 시작한 만큼 위험부담이 있는데 그걸 네가 극복할 수 있겠느냐?”라며 미리 아 이의 미래를 결정짓고 나의 틀에 맞추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지지해주고 지원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성장하는 엄마의 모습을 조금은 흉내내고 있지 않은가 싶다.

결과보단 과정에 주목하라

그렇다면 강점 활용 과정의 구성 개념 중 두 번째인 ‘성공 경험’을 하게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느끼게 된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결과를 중시하는 성공 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캐럴 드웩(Carol Dweck) 이 정립한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 이론으로 성공의 개념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마인드셋 상태를 성장형과 고착형,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개인의 특성이 고정되었다고 믿는 고착형의 사람들은 ‘실패는 나’라고 생각해서 좌절하는 반면,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성장형의 사람들은 실패를 기회 삼아 변화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패의 좌절을 하나씩 잘 극복해가는 노력의 과정 자체도 성장의 과정으로 간주할 때 최종적으로 닿을 수 있는 성공의 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적인 분위기를 보면 금메달리스트는 범국민적인 영웅이 되지만 상대적으로 은메달리스트 이하 노메달의 선수들은 죄인처럼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거기에는 그 결과를 내기까지 그들이 흘려야 했던 눈물과 땀의 의미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실상 우리 어른들도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상장을 하나 더 받아 왔을 때, 90점보다는 100점을 받았을 때, 대회 입선보다는 금상을 탔을 때 칭찬을 더 한다. 성적이 떨어지거나 상을 타지 못 하면 그동안 기울인 노력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어른들이 결과만을 보고 평가해서 아이들을 좌절시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얼마 전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큰아들이 바닥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대학에서 주최하는 미술 실기대회에 참가 했는데 결과가 나쁠 거 같다고, 재능이 없는 것 같다 며 진로를 다시 생각해 봐 야겠다는 말을 했다.

공부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를 위로해 줄 말을 찾다가 고작 했던 말이 “재능이 없는 건 아니고 네가 상복이 없나봐. 그래도 열심히 했잖아”였다. 나름은 결과 중심의 위로보다는 과정 중심의 위로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굴려 했던 말이다.

하지만, 운이나 재능과 같이 스스로가 통제 불가능한 것에 귀인하기 보다는 노력과 같이 통제 가능한 것에 귀인 하여 칭찬도 위로도 해주어야 한다는 와이너(Winer)의 귀인이론을 어설프게 배운 결과였다.

다행히 대회에서 입선하여 그나마 아들의 사기가 회복되어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난 운이 없는 아이’라고 자신을 평가하도록 교육한 꼴이 될 뻔했다.

이 상황에서의 위로를 상복이 없는 것으로 귀인하지 않고 노력한 과정에 대해 칭찬해주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성장의 작은 디딤돌 하나하나를 만드는 중에 있다고 위로해주었으면 결과와는 상관없이 아들이 실망하는 정도가 약하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데 정답은 없다. 하지만 성장하는 아이의 심리적, 정신적 눈높이에 맞추어 함께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며 흔들리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든든한 안전지대가 되어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