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발표 ① 권순현  역량교육디자인연구소 소장

2014년부터 학생중심의 맞춤형 수업혁신과 학교공동체혁신을 이루기 위해 ‘수업혁신&4자협약 제도화연구’를 추진해온 서울미술고등학교에서는 지난 2016년 12월 23일 ‘수업혁신&4자협약 제도화연구’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본지는 이 세미나에서 발표된 경기도교육청 김성천 장학사의 ‘학교혁신의 성공조건과 과제’를 게재한 데 이어 이번에는 역량교육 디자인연구소 권순현 소장 등이 발표했던 사례 3편을 소개한다.

유대인의 성공 신화를 이끌어낸 유대인의 교육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유대인 관련된 책도 많이 출간되었고 학교, 학원 등에서도 유대인 교육이 열풍이다.

유대인의 학습법 중의 하나가 하브루타 학습법인데 요즘에 교사들이 이 학습법을 배우고 적용하기 위해서 연수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유대인 교육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유대인 교육의 뿌리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이다. 유대교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구약성경, 특히 토라인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신앙교육을 제외하거나 강조하지 않는 유대인 교육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유대인 교육은 신앙교육에서 시작이 되었고 그 신앙교육이 자연히 인성교육으로 이어졌으며 학과 실력으로 연결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성경을 읽어주고 태어나서 13세까지 성경을 반복하여 소리 내 읽으면서 암송하고 탈무드를 디베이트(유대인의 토론 방법)하고 있다.

중학교에 올라와서야 우리가 말하는 교육인 국,영,수,사,과를 공부하는데 그것도 오전에는 역시 성경과 탈무드를 공부하고 오후 3~4시간만 학과 공부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유명한 아이비리그 대학의 30%가 유대인들이며 경제, 정치, 사상, 예술,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성공한다. 세계 인구비율의 0.2%임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22%(실제로는 30%)를 차지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인성과 품성은 정말 뛰어나다.

한국의 교육을 말하라고 하면 당연히 ‘국,영,수,사,과’라고 알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한글을 가르치고 셈을 가르치며, 영어 알파벳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가 높아진다.

중고등학교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2배 이상 공부를 많이 하는 나라이고 사교육비가 가장 많은 나라이며 그러면서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률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이렇게 많은 공부를 하면 엄청난 결과와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초라하다.

세계에 영향력을 주는 인재가 불과 1~2명에 불과하고 노벨상은 하나도 없는 초라한 성과이다. 한국에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자녀 95%가 대학교 전후로 교회와 신앙에서 떠난다는 충격적인 통계가 있다.

믿는 부모들이 성경 교육은 교회에만 맡겨놓고 ‘국,영,수,사,과’인 학과 공부에만 내몰아서 생긴 일이다.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인의 자녀들이 신앙도 잃어버리고 인성도 잃어버리고 그렇게 잡으려고 했던 학과 실력도 초라하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교육에 어릴 때부터 올인을 하니까 신앙이 굳건히 서 있고 인성교육도 잘 되었으며 학과 실력 또한 세계 최고이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다. 바로 유대인의 신앙교육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진정한 교육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을까?

그래서 본 연구는 유대인 교육을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개발하여 교육과정을 만들고 학부모들에게 널리 전파를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번 강의에서는 연구하고 있는 일부분을 제시하고자 한다.

1. 0세에서 13세까지 교육

유대인의 풍습에는 13세에 성인식이라는 바아미츠바 의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식만큼 중요한 행사이다. 유대인은 0세~13세 기간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백지상태인 뇌와 마음을 갖고 나온다.

이 기간에 뇌와 마음에 어떤 것을 그려 넣느냐에 따라 평생을 간다고 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 임신했을 때=강보교육을 한다. 아이가 뱃속에 임신 되었을 때부터 아이를 싸는 강보에 말씀을 새긴다. 아이가 태어나서 일주일 혹은 몇 주간 읽어야 할 말씀을 기록해서 강보에 아이를 싼다. 이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에게 두른다는 의미이다.

나. 태어나서부터=아이가 어릴 때 어머니가 1년에 적어도 2~3번 정도 모세오경을 암송해준다. 유대인들은 전쟁 시 화살통에 화살이 많아야 유리한 것처럼 아이를 많이 낳아 훌륭한 인재로 키우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임신했을 때부터 읽어 주고 태어나서도 읽어준다. 스스로 성경을 읽을 때까지 아버지가 읽어준다. 그리고 스스로 읽을 나이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읽어준 성경을 전달해준다.

다. 13세 전후 교육내용 : 토라, 탈무드 교육=탈무드의 80%는 모세오경의 주석이다. 13세 이전까지(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는 가정과 회당에서 성경(특히, 모세오경)을 통째로 암송을 하고 탈무드로 부모와 함께 질문과 토론을 한다.

13세 이후(중·고등학교)에는 오전에는 역시 탈무드를 공부하면서 어떤 것이 맞고 더 설득력 있는 해석인지 연구하고 토론하게 한다. 오후에는 수학, 과학 등의 학과 공부를 한다.

라. 토라와 탈무드를 가르치는 학교=유대인의 교육은 유치, 초등까지 토라와 탈무드를 가정에서는 부모가 가르치고, 회당에서는 랍비가 가르친다. 토라와 탈무드에는 역사, 사회, 문화, 전통, 법이 모세오경에 다 들어가 있다.

시험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아이들의 의식 속에 새기는 것으로, 암송하고 연구하고 토론한다. 이것이 유대인 교육의 힘이며 핵심이다.

입시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가르쳐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2000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졌다가 1948년에 모였을 때 그들의 언어를 잃어버리지 않았고 역사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기도의 습관과 패턴이 똑같았다. 이것은 가정을 중심으로 아버지가 가정의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가르쳤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부부가 협력해서 양육했으며 그래서 역사와 전통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조국에 대한 열정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마. 탈무드의 내용=초막에 대한 ‘장로의 유전’의 설명에 따르면, 초막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지을 것이며, 병든 자나 여행자도 지을 수 없다. 초막의 지붕은 땅에서 거둔 소산으로 덮을 것이며, 베갯잇이나 의복을 포함한 털이나 비단으로 덮어서는 안 된다.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몸소 실천에 옮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므로 탈무드를 공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탈무드를 빼놓고는 유대인을 논할 수 없다. 이렇게 구전으로 내려오던 ‘장로의 유전’이 기록된 탈 무드에는 편집 과정에서 토라인 모세 오경에 대한 설명 외에도 지혜로운 조상들의 지혜 모음이 첨가되었다.

따라서 탈무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모세오경의 해석 부분으로 전체의 약 2/3를 차지한다.

이를 ‘할라카’라고 한다. 둘째, 조상들의 지혜 모음이다. 이를 ‘아가다’라고 하는데 대부분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난해한 비유들이다. 흔히 한국의 서점가에서 볼 수 있는 ‘탈무드의 지혜’서들이 바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탈무드의 약 1/3 분량을 차지한다.

탈무드는 총 20권에 1만 2000쪽으로 단어의 수만 해도 250만여 개가 된다. 또, 그 무게가 75kg이나 나가는 엄청난 분량의 책이다.

2000여 명의 유대인 지혜자들이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 약 1,000년 동안 구전되는 내용을 정리해서 편찬한 방대한 책이다.

내용은 6부, 63제, 525장, 4,187절로 구성되어 있다. 탈무드는 유대인 정신문화의 총집합체로서 그들의 사상과 철학, 문학, 역사, 과학, 의학, 법률, 율법, 일반생활 등 모든 것이 망라되 어 있다.

유대인은 기록으로 남겨진 모세오경뿐만 아니라, 구전으로 내려오던 미쉬나에 지혜자들의 글과 주석 그리고 성문서나 선지서 등을 총망라하여 편집한 탈무드를 평생 교과서로 삼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탈무드 전권을 토라와 구분하지 않고 똑같은 성경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탈무드가 유대인의 평생 교과서라는 것은 책의 형식에서도 드러난다.

탈무드 제1권을 보면 1쪽 없이 2쪽부터 있다. ‘1’이란 숫자는 시작을 뜻하므로 탈무드의 쪽수에서 ‘1’을 뺀 것이다.

그것은 탈무드, 즉 하나님의 말씀은 밤이나 낮이나 반복하여 평생 읽는 책이지 시작과 끝이 있는 책이 아니라는 의미다. 유대인 랍비들은 탈무드가 내용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읽는 책이 아니라 연구하는 책이라고 말한다.

탈무드는 유대인들이 5,000년에 걸쳐 쌓아온 지혜이며, 지식의 보고라고 할 수도 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탈무드에서 정신적자 양분을 취하고, 또한 여기에서 생활규법을 찾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탈무드는 유대인을 유대인답게 만들어왔고, 또한 유대인이 탈무드를 지켜온 것 못지않게 탈무드가 유대 민족을 지켜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오늘날 유대인의 회당이나 성경을 연구하는 예시바에 가면 아이들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둘씩 짝을 지어 탈무드를 펴놓고 연구하며 토론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유대인이 구약성경이나 탈무드를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공부한다는 것을 뜻한다. 유대인을 ‘공부와 책의 민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토라와 탈무드’를 자손 대대로 전수하기 위해 그것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암송하기 때문이다.

2. 가정과 학교에서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하는 방법

유대인 가정에서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가 자녀에게 직접 성경을 가르친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대인 아버지는 언제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나? 정통파 유대인은 거의 매일 저녁, 그리고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자녀를 가르친다. 특히 안식일이나 절기 때는 반드시 가르친다.

안식일 때는 세 번 절기 식사를 하는데 매 식사때마다 성경을 가르친다. 차라리 ‘그들이 자녀들과 함께 지내는 일상생활 자체가 성경적인 교육을 취한 삶이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자세에도 2가지가 있다. 유대인은 식탁에서 가족끼리 또는 손님과 토론하는 것을 즐긴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어린 자녀들에게 식탁 예절을 익히게 하고 남과 대화하는 방법, 즉 인간관계를 가르친다.

외국인을 식탁으로 초대 했다면 자연스럽게 국제화 교육이 이루어진다. 유대인 아버지가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가르치는 모습은 자애로움 그 자체였다. 그들은 자녀를 강압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가르친다.

성경공부 시간에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껴안는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은 전 세계 정통파 유대인 아버지에게서 똑같이 볼 수 있다.

⦁ 영재교육의 4단계

제1차원 영재교육 : 일반 학교의 세상 학문 교육

제2차원 영재교육 : 유대인의 질문식과 탈무드 논쟁식 IQ 계발

제3차원 영재교육 : 유대인의 슈르드(영리함, 현명함) 계발

제4차원 영재교육: 유대인의 지혜 계발

높은 단계에서 낮은 단계로 가르친다. 3차원의 슈르드는 세상을 살면서 악인의 올무에 걸리지 않음으로써 피해를 보지 않는 현명함을 뜻한다. 슈르드를 계발하면 선과 악을 구별하는 순발력을 길러 죄를 멀리함으로써 재앙을 피할 수 있다.

4차원의 지혜 개발이란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지혜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이다.

유대인 중에 뛰어난 천재와 역사를 움직인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원동력은 바로 4차원 영재교육에 있다.

그런데 유대인 부모는 자녀에게 세상 학문인 학교 교육부터 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장 높은 제4차원의 지혜교육을 먼저 하고, 다음에 제3차원 단계인 슈르드 교육을 시키며, 다음 단계에서 제2차원의 질문과 탈무드 논쟁식 IQ 계발 교육을 한 다음, 맨 마지막 단계에서 제1차원의 학교 교육을 시킨다.

유대인 영재교육의 방법을 높은 단계에서부터 낮은 단계로 살펴보기로 하자.

가. 귀납법 성경공부와 IQ 계발=학습의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과 답변으로 이뤄졌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귀납적 교육 방법이 유대인을 특별하게 길러낸다. 탈무드 교육자료들도 교사가 질문을 던지면 학생이 스스로 답을 생각하도록 구성돼 있다. 유대인 부모는 질문에 대한 답을 빨리 주지 않는다.

그러고는 왜 이답이 맞고, 저 답이 틀린가에 대해 논리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면서 자녀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 자녀는 고도의 분석적인 사고와 분별력 및 창의력을 기르게 된다. 유대인 아버지는 지혜의 말씀인 성경을, 조상대대로 전수해온 교육법에 따라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의 IQ 교육은 아버지의 몫이다.

만약 한국의 기독교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녀를 직접 가르친다면 어떻게 될까? 예외도 있겠지만 대충 이런 모습이 떠오른다.

먼저 1명씩 가르치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 모두 한자리에 모은다. 그리고 엄숙하게 무릎을 꿇고 찬송과 기도를 드린 뒤 아버지의 일방적인 설교가 시작된다. 

“오늘은 삼손에 대해 배운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였는데 힘이 장사였어. 그 힘은 그의 긴 머리카락에서 나왔지. 그러나 타락한 이방 여인 델릴라를 잘못 사귀어서 머리카락이 잘린 뒤 힘을 잃었단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예수를 안믿는 불건전한 사람을 조심해야 돼, 알았어?”

자녀 모두 “네” 그리고 다시 기도를 마친 뒤 아버지가 한마디 더 한다.

“이제 빨리 가서 학교 숙제해라!”

이처럼 교사나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설명해주는 연역적 교육 방법은 아이들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으니까 배운 내용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나마 배운 것도 쉽게 잊어버린다.

한국이 교육에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영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 IQ 계발과 인성교육을 동시에 하는 질문식 율법 교육=유대인은 이렇게 자녀에게 답부터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된 질문을 통하여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설사 틀렸다고 해도 윽박지르지 않고 더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한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인성’ 부분을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점점 ‘얕은 생각, 제멋대로의 행동’에 물든다.

어떻게 하면 한 인간이 갖춰야 할 인성의 요소마다 최고급의 가치를 갖도록 자녀를 양육할 수 있을까? 가장 현실적인 교육 방법은 부모가 자녀에게 각 인성의 요소마다 중요성을 강조하고 반복적으로 교육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인성교육의 극히 단편적인 예다. 유대인은 인성의 각 요소가 왜 중요한지 그 이유를 먼저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그래야 행동이 바뀔 명분이 생긴다. 명분이 생기면 행동이 쉬워지고 행동이 반복되면서 당연한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져 내면적 자신감을 갖게 된다. 유대인이 다른 민족보다 자긍심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유대인 교육의 우수성은 인성의 각 요소마다 그 요소를 왜, 언제,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 그 논리적 근거와 교육 방법이 준비되어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유대인은 대를 이어 이것을 실천하는 데 성공한 민족이다. 예를 들어 보자. 여섯살 된 아들(다윗)이 옆집을 지나다가 그 집의 장미를 꺾었다. 이때 유대인 아버지는 아들에 게 어떻게 할까? 당장 화를 내며 왜 남의 집 꽃을 꺾느냐고 야단을 칠까? 아니다. 유대인 아버지는 아들이 답을 찾을 때까지 질문을 한다. 그래서 유대인은 세 계에서 가장 말이 많은 민족이다.

세 사람이 모이면 5가지 의견이 나올 정도다. 자, 다윗의 아버지가 어떻게 인성교육을 하는지 보자.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수준이 어떻게 단계별로 높아지는지가 핵심이다.

이런 교육을 받으면 아들은 어떻게 변하나? 첫째, 저절로 인성교육이 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고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잘생긴 사람이나 못생긴 사람이나 귀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법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경의 법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공동체를 위한 법도 잘 지켜야 한다는 준법정신이 투철해진다. 이에 더하여 인간의 근원을 생각하는 철학적 사고가 싹트기 시작한다.

둘째, 유대인 부모가 자녀를 가르칠 때 사용하는 질문식 교육은 자녀의 IQ 계발에 유익하다. 질문식 교육은 자녀들의 사고를 깊게 하고 분석적인 사고와 창의력 및 통합력을 키워준다. 그리고 선과 악을 분별하게 하고 그 토론의 내용을 기억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유대인 아버지는 평상시에도 이것보다 더 자세하게 자녀들과 율법을 토론하며 까다롭게 가르친다. 이것이 유대인의 질문식 영재교육 방법이다. 따라서 아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일은 거의 없다.

만약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아버지는 인내심을 갖고 똑같이 반복하여 가르친다. 교육은 반복이다. 그리고 반복은 습관을 낳는다.

이런 교육을 받으면 어떤 인성의 요소에 영향을 주겠는가? 사랑과 진실성, 절제력, 수양, 예의 바름, 정직한 생활, 완전, 질서의식, 남을 돕는 생활, 친절한 행동, 책임감 등에 영향을 준다.

다. 질문식 교육 사례=남의 물건을 주웠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좀더 어려운 상황을 들어 도둑질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한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많은 돈을 주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면 돈의 주인이 없으니 그냥 가져도 되는 것인가? •그렇게 하면 도둑질인가? •도둑질을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어떻게 주인을 찾아 돌려주는가? •주인은 어떻게 찾는가? 파출소에 신고한다.

파출소에 돈을 찾으러 온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가 주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만약 또 한 사람이 나타나 그 돈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두 사람 중 누가 진짜 주인인지 어떻게 구별하는가? 진짜 주인을 구별하려면 법도 알아야 하지만 지혜가 필요하다. 일정기간 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돈은 어떻게 될까? 그 돈을 주운 사람의 소유가 되는가? 왜 그런가? 질문과 토론이 계속된다.

이번에는 길에서 강아지를 주웠을 경우다. 역시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이 강아지는 주인이 없는 가운데 주 웠으니 그냥 데려다가 키워도 되는가? •그것이 도둑질이라면 도둑질을 안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어떻게 주인을 찾아 돌려주는가? •주인에게 돌려주는 방법은 무엇인가? •파출소에 신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파출소에 강아지를 찾으러 온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가 주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만약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이 강아지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두 사람 중 누가 진짜 주인인지 구별할 수 있는가? •주인이 얼마 동안 나타나지 않으면 주운 사람의 소유가 되는가? •왜 그런가? •강아지에게 밥을 주고 돌봐야 하는 데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 •데리고 있는 동안 그 강아지가 다른 사람을 물었다면 누가 법적 책임을 질 것인가? •그 강아지를 보호하고 있는 동안 다리를 다쳤다면 누가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가?

역시 질문과 토론으로 답을 도출한다. 답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가장 강조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천하보다도 귀중한 개인의 생명과 소유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생명의 권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목표를 둔다.

유대인 아버지는 613개의 율법 중 하나인 ‘도둑질’이란 주제를 놓고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6개월에서 1년 동안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한다. 질문의 수준에는 앞서 언급한 6가지의 단계가 모두 들어 있다.

이런 식으로 유대인 어린이는 세 살 때부터 613개 율법을 하나하나 배운다. 그러니 유대인의 두뇌가 얼마나 분석적이고 창조적이며 통합적이겠는가? 학교 교육만 받은 이방인과는 사물을 보는 시각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교육을 통해 유대인 수직 문화의 핵심인 신본주의 사상이 얼마나 강하게 심어지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그가 받은 인성교육의 내용을 얼마나 실생활에 잘 적용하겠는가? 미국에 200여 종족이 살고 있지만 그중 유대인의 범죄율이 가장 적은 이유는 바로 이런 율법 교육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자녀를 이렇게 교육하려면 먼저 아버지가 가르칠 만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율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가르치는 기술도 있어야 한다.

라. 유대인 학교의 그룹 토론식 IQ 계발=정통파 유대인들이 모여서 탈무드를 공부하는데 참여해보면 우리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많이 있다. 탈무드 중에서 경제 문제를 다루는 반의 학생 수는 10명 정도 됐다.

주제는 경영주와 노무자의 관계였는데, 실례는 농촌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농장주와 일꾼들과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농장주가 일꾼들에게 다음 날 아침 밭에 나와 일을 하도록 부탁했다. 그런데 아침에 비가 와서 일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 주인이 일꾼들에게 하루 품삯을 주어야 할까, 아니면 안줘도 될까하는 문제다. 물론 토론자는 각각의 답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정답은 이렇다.

만약 주인이 미리 일꾼들에게 다음 날 할 일과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일과 임금의 조건을 확실히 제시했다면 주인의 책임이 없다. 그러나 막연히 일하러 오라고만 했다면 주인이 일꾼들에게 임금을 주어야 한다. 왜 그런가? 이에 대한 현자들의 풀이(주석) 또한 자세히 나와 있다. 

둘째, 이 주제 하나를 놓고 랍비와 학생들이 토론하는 과정과 내용 또한 놀라웠다. 랍비가 본문에 대해 질문하면 학생들이 서로 손을 들고 기다리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면 답변한다. 랍비는 그 답변을 받아,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다시 질문한다.

그 학생이 대답하지 못하고 다른 학생이 대답하면 랍비는 또 다른 질문을 한다. 끝없이 질문과 답이 이어져 이 주제로 한 시간 반 동안 토론을 벌였다. 한 주제를 놓고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며 이에 대하여 서로 갑론을박하며 변론했다.

셋째, 토론하는 동안 강의실의 열기가 뜨거울 정도였다. 서로 대답을 하기 위하여 “나요, 나요”하면서 강의 시간 내내 손을 들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어떻게 이들은 그토록 질문에 열중 할까? 그것은 이들이 이미 교육의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학교는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배우기 위하여 가지만, 유대인 학교에서는 집에서 이미 모두 숙지하고 온 내용을 가지고 질문과 토론만 한다. 넷째, 토론식 교육은 학생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여러 학생과 경쟁해야 하므로 최선의 질문을 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다른 학생들의 의견들을 들으면서 도전을 받는다. 자신의 수준이 눈앞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즉 무한대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남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훈련을 통하여 언어구사능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 대화 및 토론의 방법을 익힌다. 이런 교육은 재치와 순발력을 키운다.

유대인이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하는 것은 이런 교육 덕분이다. 암기식 학습법에 따라 빨리빨리 ‘정답’을 내는 데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이런 토론 수업이 지루하고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교육 방법을 이해하면 유대인이 왜 까다로운지, 유대인 변호사가 왜 유능한지, 유대인 학자가 왜 우수한지를 알 수 있다.

유대인 변호사와 다른 나라 변호사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예를 들어보자. 다른 나라 변호사들이 작성하면 고작 2~3쪽짜리에 불과한 계약서가 유대인 변호사가 작성하면 수십 쪽짜 리 책으로 되어 나온다.

유대인 변호사는 그 계약이 발효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 부담들을 일일이 나열하여 대비책을 세우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말 예에 불과하다. 탈무드의 많은 부분이 이렇게 각 주제마다 구체적인 질문과 응답으로 구성되어 있어 실제 생활에서 활용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따라서 율법에 약한 유대인은 일일이 랍비에게 물어 생활한다. 물론 그들에게는 십계명을 포함한 모세오경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탈무드의 교육 내용은 가정과 교육, 정치, 의학, 법학, 경제 등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로 하여금 영적 세계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해주는 저력이다.

그리고 우주를 품는 넓은 마음을 갖게 해주는 힘이다. 하나님은 실로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 아닌가!

마. 탈무드 논쟁식(하부르타) IQ 계발=하부르타는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탈무드를 가르친다. 탈무드는 모세오경의 주석이다. 유대인들의 토론 문화가 유명한데 디베이트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졌다.

디베이트에도 울타리가 있어야 한다. 동성애에 관하여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토론을 한다면 기술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

유대적 배경의 주석가들이 해놓은 내용을 자신의 견해를 집어넣어 시나리오를 만든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배경 자체가 미드라쉬의 자료에서 창의성과 상상력을 집어넣어서 만들었다.

디베이트를 하더라도 성경적인 관점에서 토론해야 한다. 성경해석의 문제를 잘못 건드리면 이단이 된다. 유대인 교육전공을 했기 때문에 공격을 받을 때가 있다. 공개적인 강의에 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하부르타는 토론하는 친구라는 뜻이다.

탈무드식 디베이트는 유대인의 토론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1차적으로 성경을 가지고 토론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탈무드의 한 구절만 가지 고도 한두 시간씩 논쟁을 벌인다.

한쪽이 탈무드를 해석하면 다른 쪽이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 조목조목 질문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다시 상대방이 그 답의 부당함을 지적한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사정없이 그곳을 헤집고 들어가며 공격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모든 가정을 제시하고 각 경우마다 대책을 세운다. 

탈무드 논쟁을 하다보면 점점 더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하여 교묘한 질문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해석하고 질문하는 역할을 바꾸어 논쟁을 계속한다.

탈무드 논쟁을 할 때 종종 책상을 쳐가며 큰 소리로 격렬하게 언쟁을 벌여서 옆에서 보면 마치 싸우는 것 같다. 서로 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 토론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도서관은 조용하지만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공부하는 방은 항상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유대인 교사는 학생들에게 탈무드의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대강의 줄거리만 말해주고 방향만 제시하면 그만이다.

낮은 학년의 학생들은 빙 둘러앉아 공부하는데 교사는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잠자코 듣고만 있다. 물론 수업 준비과정에서 의문점이 생기면 수시로 교사에게 물어볼 수 있다.

이는 탈무드 논쟁을 할 때 학생 스스로 그 속에 담긴 참다운 진리를 파악해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학생의 입장에서는 1시간 수업을 위하여 4~5시간의 예습과 복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졸업을 앞둔 고학년이 되면 1시간의 수업에 무려 20여 시간의 준비학습이 필요하게 된다. 물론 교사와 학생 간의 토론도 치열하게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유대인은 자녀가 세 살부터 이런 방식으로 가르친다. 말 그대로 조기교육이다. 교육에서 널리 알려진 세살 신화는 바로 유대인 교육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교육을 하는가? 어머니가 아니라 바로 아버지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탈무드 논쟁법을 훈련시킨다. 자녀의 IQ 계발은 아버지 몫이다. 토론식 교육은 비판적, 분 석적, 조직적, 통합적인 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에 IQ 계발에 큰 도움이 된다.

어디 이것뿐인가. 토론하는 동안 평소 생각할 수도 없었던 무수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니 저절로 창의력이 길러진다. 또, 토론하는 두 사람의 창의력이 부딪치면서 더 고차원적인 창의력이 생긴다. 토론의 시너지 효과는 대단하다.

유대인의 율법 교육은 질문식이나 탈무드 논쟁식뿐만 아니라 암기 교육도 상당히 강조한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 엄청난 경외심을 가지고 있어 말씀을 한 글자라도 틀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경 말씀의 일점일획이라도 틀리면 저주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잘못 외우지 않으려고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여 확실하게 외운다. 탈무드에 랍비 힐렐이 “백 번 연습하는 것보다 백한 번 연습하는 것이 낫다” 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암기 교육이 시대에 뒤떨어진 잘못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교육학적으로도 암기 교육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머리에 필요한 정보, 즉 지식의 입력 없이 어떻게 새로운 것을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개인의 두뇌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인프라, 즉 기본지식은 꼭 필요하다. 잘못된 것은 암기 위주의 교육이다.

유대인처럼 4차원 영재교육과 병행하여 암기 교육을 시킨다면 금상첨 화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독 유대인 중에서 천재들과 역사를 움직인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까닭은 무엇인가? 노벨상 수상 30%의 비밀은 무엇인가?

일반 학교는 지식만을 가르치는 1차원적 교육 에 머물지만 유대인 영재교육은 지혜와 슈르드 및 탈무드 논쟁을 통한 IQ 계발 등 세 단계를 더해 4차원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제4, 3, 2차원 영재교육은 각각 따로 계발되는가? 아니다.

거의 동시에 성취된다. 유대인의 성경이나 탈무드는 그들의 율법 책이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내용을 질문식이나 탈무드 논쟁식으로 가르쳐 IQ를 계발한다는 것은 제4차원 지혜, 제3차원 슈르드, 제2차원 IQ 계발을 거의 동시에 진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또한 놀라운 유대인의 지혜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대인은 자녀교육을 할 때 수직 문화인 지혜 교육과 슈르드 교육으로 하드웨어의 용량 자체를 키운 뒤 일반 학교에서 세상 학문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일평생 그들의 세상 학문 교육이 100% 이상 효과를 발휘한다.

최첨단의 세상 학문을 배웠다는 지식인도 인성 교육이 부족하면 여러 가지 약점이 드러난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단견적이며 실수가 잦다.

지식은 많은 데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 학문을 배운 지식인들보다 지혜를 배운 지혜자들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더 바람직한 것은 유대인처럼 지혜와 슈르드를 가진 지혜자이면서 동시에 최첨단 세상 학문도 겸한 지식인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유대인의 영재교육은 IQ 계발 영역에서도 비유대인들과 다르다.

일반 학교 교육은 처음부터 현대 학문과 현대 과학 위주로 수평 문화에 속하는 내용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유대인은 아버지의 질문식 교육 방법이나 탈무드 논쟁법을 통하여 일반 학교 교육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IQ 계발을 먼저 한 다음 세상 학문을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그 들의 독특한 IQ 계발 방법은 일반 학교 교육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암기 위 주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유대인 특유의 질문과 토론식 교육이 그것이다.

정주영 씨가 받은 한국식 지혜 교육을 예를 들어보자. 정주영 씨의 할아버지는 마을 훈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명심보감은 물론 사서삼경까지 배웠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사에서 가장 고난의 시기인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민족의식이 투철하고 누구보다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자랐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가 13세 이전에 한국식 4차원 지혜 교육을 받았다는 얘기다. 그가 전 세계를 누비며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그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지혜라는 도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성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고난의 역사의식과 효도 교육을 가장 잘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는 큰 인물이 된 이후에도 그의 정 신세계를 죽을 때까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정주영 씨가 받은 교육을 유대인 교육과 비교했을 때 빠진 점은 아버지로부터 질문식 또는 탈무드 논쟁식 IQ 계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특별히 하늘로부터 받은 재능으로 이를 대치할 수 있었다.

기업을 할 때 정 씨 밑에는 국내외 일류 학교 출신들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명대학 출신 박사들이 수두룩했다. 그런데도 그가 그들을 앞서가며 놀라운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 학문에서 배운 지식 때문이 아니라 바로 13세 이전에 받은 지혜 교육 덕분이었다.

<명심보감>이나 사서삼경에는 사람을 다루는 인간관리의 원리와 큰 지도자가 되는 원리는 물론, 세상에서 머리가 될망정 꼬리가 되지 않는 지혜들이 수두룩하게 적혀 있다.

그러므로 그가 수많은 세상 박사들도 풀지 못하는 일들을 너무나 많이 해결한 것은 바로 그가 3세 이전에 받은 지혜 교육과 율법 교육의 힘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3. 왜 유대인은 영상교육을 피하는가?

요즘 한국에서 우려되는 교육 방법 중 하나가 초등학교에서부터 칠판 대신 영상을 통한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육 내용을 영상에 담아 최첨단 영사기로 쏘아 보여주며 가르친다.

집중력이 낮은 산만한 어린이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다. 이제 영상이 아니면 교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 학생들이 영상에 중독되어 있다. 이는 유대인 학교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유대인 학교의 교실에는 칠판이 있지만 이것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 흔한 오버헤드 프로젝터도 없다.

영상물은 기껏해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손으로 그리거나 만든 작품이다. 한국인 가정과 유대인 가정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한국인 집은 예외 없이 거실에 큰 TV가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거실은 예외 없이 도서관처럼 꾸며져 있다.

유대인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학습 방법으로 최첨단 TV 영상화면을 활용하는 대신에 책을 많이 읽게 하고 토론을 많이 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어떻게 아는가? 꼭 알아야 할 시사 내용은 TV 대신에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 얻는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자녀를 가르칠 때 여러 가지 학습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중 시청각을 통한 교육 방법은 교육의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특히 어릴 수록 시각적인 체험은 강한 충격과 자극을 준다. 그러므로 가장 강력한 자극을 주는 전달 매체인 영상물을 교실에서 활용하면 교육적 효과가 높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실제 한국의 학교에 가보면 교실마다 대형 TV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다. 자녀들이 이런 영상문화에 오염되면 장래를 망치기 쉽다.

가. 왜 어린이에게 영상화면 교육이 해로운가?=첫째 유대인은 왜 가정에 TV를 놓지 않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각을 통해 들어 오는 강렬한 세속적인 수평 문화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자녀를 성결하게 키우려면 어린 나이에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학업에 더 정진할 수 있다. 둘째, TV의 내용과 관계없이 왜 영상 교육이 어린이에게 해로운가? 어려서부터 자극적인 영상 화면에 노출된 아이들은 계속 더 강하고 더 선명하고 세련된 화상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싫증을 느껴 교육의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인간의 욕구는 한이 없다.

귀로 듣는 라디오도 시시한데 그보다 덜 재미있고 깊고 오래 생각하게 하는 책 읽기는 더욱 싫어지게 된다. 일단 두꺼운 책을 꺼내는 것조차도 귀찮아한다. 그러니 점점 더 강렬한 영상교육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반면 유대인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깨알같이 쓰인 그 까다롭고 복잡하고 어려운 탈무드를 끊임없이 읽고 토론하게 된다. 유대인 중에는 어려서부터 너무 작은 글씨를 많이 읽어 눈이 나 빠진 까닭에 안경을 쓴 이들이 많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어려운 탈무드의 내용을 분석하고 해석하다 보면 일반 학교 교육의 내용이 너무나 쉬워 몇 시간 공부하지 않고도 쉽게 따라갈 수 있다고 한다.

어린 나이부터 작은 글씨에 까다롭고 복잡하며 어려운 내용으로 훈련받은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영상물의 내용 정도는 너무나 쉽게 따라갈 수 있게 된다.

반면 자극적인 영상물에 물든 아이들은 작은 글씨로 쓰인 어려운 내용에 적응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마치 가난한 집 아이가 부잣집 음식을 먹기는 쉽지만, 부잣집 아이가 가난한 집 음식을 먹기는 어려운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자녀를 참되게 교육하려면 어려서부터 매사에 넓은 길보다 좁은 길을 걷게 하고, 풍요한 생활보다 고난의 생활을 체험하게 해야 한다.

셋째, 그뿐만 아니라 영상을 보는 일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쉽고 편하다. 길게 누워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하루 종일 TV를 볼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자녀들이 영상물에 길들면 게을러지기 쉽다. 이런 습관을 지닌 사람이 책상에 앉아 문자로 된 책을 읽거나 머리로 생각해가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넷째, TV 화면은 1~2초 간격으로 내용이 바뀐다. 그것도 모자라 그 바뀌는 시간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TV에 심취한 사람의 생각도 TV 화면이 움직이는 대로 빨리 움직이게 된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TV를 많이 시청하면 자녀들이 스스로 오랫동안 깊고 넓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린다.

인생을 깊고 넓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없어진다. 오늘날의 문제는 이러한 가정환경이 아이들 스스로 오랫동안 생각할 수 없도록 방해한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부산스러우며, 더 빠른 변화를 추구한다.

사물에 대해 깊고 넓게 차분히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영상물을 통해 빨리빨리 문화에 길든 탓이다. 얼마나 큰 비극인가?

깊고 넓게 그리고 오래 생각하는 힘은 고전 같은 양서를 읽을 때 길러진다. 유대인이 왜 가정에서 TV를 보지 않고 자녀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학습할 수 있게 하고 정신적인 토라 교육을 시키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TV나 컴퓨터에 익숙한 아이들은 모니터 앞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 그 결과 사람과의 대화를 멀리하며 자연과의 친밀감은 더욱 없어진다. 이는 대인관계 형성에 심각한 장애를 가져오고 EQ 교육에 좋지 않음은 물론이다.

여섯째, TV를 오래 보게 되면 집중력과 창의력도 떨어진다. 왜냐하면 자신이 열정을 갖고 능동적으로 일을 주관하게 될 때 집중력이 생기며 창의력도 높아지는데, TV는 주관자의 입장이 아니고 수동적인 방관자의 입장에서 시청하기 때문이다.

한국 학교의 교실은 왜 산만한가? 어려서부터 TV에 노출된 아이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방법은 유대인처럼 영상문화를 차단하고 자녀들에게 책을 많이 읽게 하고 토론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녀의 IQ 계발과 인성교육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책을 선정할 때도 인생을 깊게 생각하게 하는 주제(IQ보다는 EQ나 지혜의 내용)를 택하되 쉬운 내용에서 깊은 내용으로 수준을 높여나가야 한다. 일곱째, TV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절제가 안 된다.

계속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 유혹을 이기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즉 시간 낭비가 너무나 많다.

더구나 TV 프로그램의 내용은 삶의 의미를 담아 수직 문화보다 대부분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재미 위주의 수평 문화이기 때문에 어린 자녀들이 절제하기가 더욱 힘들다. 어른들도 절제하기 힘든데 자녀들에게는 얼마나 더 힘든 일이겠는가?

반면 TV가 없는 유대인 가정은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그 시간에 놀고 있는가? 아니다. 자신들의 신본주의 정신세계를 키우는 데 필요 한 성경공부를 하고 고전을 읽고 토론하며 보낸다.

나. 유대인이 영상교육을 피하는 교육학적인 이유=첫째, 인간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수단은 언어와 글쓰기다. 어릴 때일수록 언어로 표현하 다가 조금 성장하면서부터 글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글은 문자로 표현하기 때문에 인간의 기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도구다.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 자기 생각을 정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문자로 표기된 책을 접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면 영상물의 내용은 감동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글쓰기에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둘째, 언어와 글은 부모와 자녀 사이 그리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 가르침과 배움의 수단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말하기와 글쓰기는 인간 사회에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다.

어떤 이는 말은 잘하나 글재주가 없고, 어떤 이는 글재주는 있으나 말을 잘 못 하기도 한다. 그러나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려면 두 가지를 다 잘해야 한다.

그런데 TV 같은 매체는 듣기만 하고 말할 기회가 없다. 제작자가 의도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들을 뿐이다. 가정에서는 식사 시간에도 TV를 켜놓으니 오순도순 대화할 시간이 없다. 현대인의 비극이다.

셋째, TV시청은 어린이의 독해력도 방해한다. 카이저 가족재단과 어린이 디지털미디어센터가 생후 6개월부터 6세까지의 자녀를 둔 부모 1,065명을 대상으로 아이들의 미디어 이용 습관에 대해 전화로 무작위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장시간 TV를 켜놓고 있는 가정의 6세 미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글 읽 는 방법을 배우는 데 훨씬 많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새로운 조사 보고서가 최근 공개됐다.

‘중증의 TV 시청 가정’에서는 4~6세 어린이 중 34%가 글을 읽을 수 있지만 이보다 휠씬 짧은 시간 TV를 켜놓은 가정에서는 그 비율이 5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어린 자녀들에게 영상물을 많이 보여주면 글자로 된 단어들이 두뇌에 입력될 기회가 없다. 설사 입력된다고 해도 강렬한 영상 이미지에 밀려 쉽게 잊혀진다.

넷째,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 중 하나는 논리를 전개하는 힘이다. 그런 데 영상물은 줄거리의 소개는 가능할 지 모르지만 까다롭고 복잡한 학문적인 논리를 전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글쓰기는 아무리 복잡한 학문적인 논리라고 하더라도 끝없이 표현할 수 있다.

어느 분야이든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논리가 필요하다. 더구나 학문은 고도의 복잡한 논리를 요구한다. 따라서 글쓰기는 모든 학문을 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인 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논리적인 사고에서 나온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자녀들과 까다롭고 복잡한 613개의 율법과 수천 개의 율례와 법도에 대해 토론하면서 고도의 논리와 말하기를 가르치며, 이를 글로 정리하면서 학문의 기초인 글쓰기를 훈련시킨다.

세상에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논리적인 언어 사용과 글쓰기를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훈련하는 셈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법대 출신이 논리에 밝은 것처럼 유대인도 논리에 밝다. 유대인이 미국의 학계와 법조계를 석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가들은 자기 생각을 말이나 글로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유대인 예술가 중에는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독특한 가정 교육 때문이다.

다섯째, 고전을 많이 읽으면 깊이 있는 수직 문화의 사람이 되어 정신세계의 인프라인 철학이나 사상을 갖게 된다. 존경받는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

자기 분야에서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올바른 가치관과 삶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성숙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다.

반면 TV 같은 영상문화만 접하면 가볍고 육을 자극하는 수평 문화에 물들어 타락하기 쉽다. 오늘날 학생들이 부모나 교사를 존경하지 않거나 점점 더 폭력 서클이 난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현재 초등학교부터 교사가 영상 매체를 통하여 교육시키는 망국적인 교육 풍토를 불구경하듯이 보고만 있다. 언론에서도 영상교육을 앞서가는 교육인 양 부추기는 듯하다. 책을 멀리하고 영상에 중독된 세대가 어른이 됐을 때를 걱정해야 한다.

깊이 있는 수직 문화 대신에 얄팍한 수평 문화로 오염된 혼돈의 세상, 심히 염려되는 부분이다. 노벨상 30%를 독식한 유대 민족은 왜 가정이나 학교에서 TV나 영상물을 없애고 그 대신 책을 읽히고 토론을 많이 시키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가정에서 TV를 치우고 학교에서는 영상교육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문자로 된 책과 신문을 많이 읽혀야 한다.

 4. 아이의 고집을 다스리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이로 키워라

가. 사랑의 매란 무엇인가?=사랑의 매의 성서적 배경은 성경에서는 분명히 경건한 자녀로 키우기 위해서 ‘사랑의 매’를 들 것을 권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서적 ‘사랑의 매’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첫째,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단언한다. “부모가 자식을 차마 초달하지 못하는 것은 그 자식을 미워함이다.” 잘못된 자녀에게 매를 들지 않는 부모가 오히려 자녀를 미워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자녀가 장차 잘못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은 자녀를 미워하는 것으로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왜 잘못된 자녀에게 매를 들어야 하는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징계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부모가 ‘징계의 매’를 ‘사랑의 매’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성도에게 ‘공의’와 ‘사랑’을 구별하여 보여주듯이 부모도 자녀에게 ‘공의’와 ‘사랑’을 구별하여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아이의 미련한 버릇을 쫓기 위함이다. 먼저 잠언 22장 15절을 보면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분이다.

때문에 아이의 속성을 제일 잘 알고 계신다. 그분이 친히 아이의 마음에 미련한 것이 얽혀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이것을 멀리 쫓아낼 방법이 바로 징계하는 채찍이라고 알려주셨다. 즉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미련한 버릇을 고치기 위하여 ‘징계의 매’가 꼭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솔로몬은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라고 말했다.

이 말씀은 ‘채찍’과 ‘꾸지람’은 자녀를 훈계하여 지혜를 주고 어미를 욕되지 않게 하려고 꼭 필요한 것이란 뜻이다. 즉 징계를 받지 않고 자란 아이는 경건한 자녀가 갖추어야 할 지혜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셋째, 자녀의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기 위함이다. 성경은 얼마나 강하게 사랑의 매를 강조했는가?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사랑의 매를 드는 것이 자녀의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한 것은 자녀의 영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자녀를 정말 사랑한다면 자녀들이 세상의 것을 얻는 데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자녀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넷째, 부모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함이다. 자녀에게 매를 들면서 기뻐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녀에게 매를 들면 부모 마음은 더 아프게 마련이다.

그런데 성경은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면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장차 사랑의 매가 가져올 열매를 말한다. 매를 맞고 자란 자녀들이 커서 효자가 되어 부모의 노후를 평안하게 해주고 마음의 기쁨도 가져다준다는 뜻이다.

반면 잘못을 해도  “오나, 오냐” 하며 공의 없이 사랑만으로 키운 자녀들은 장차 제멋대로 성장하여 부모에게 불안과 근심을 가져다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자녀교육법에도 있는 사실이다. ‘매 끝에 효자 난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 효과적인 사랑의 매=첫째, 사랑의 매는 언제 필요한가? 미국의 기독교인 상담가 제임스 돕슨은 자녀가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여 고의적으로 불순종하는 행동을 할 때 때려주라고 권한다.

매 맞을 짓을 했다는 것을 아는 자녀는 매를 맞게 되면 안도감을 느끼고, 오히려 자신의 충동을 억눌러주는 매의 효과에 감사하게 된다. 어린 자녀는 종종 일부러 부모의 권위에 도전해 매 맞을 짓을 한다.

이럴 때 한번 자녀에게 지면 다시 부모의 권위를 회복하기 힘들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사랑의 매의 강도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사랑의 매를 들 때는 잘못하면 아픔이라는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아이가 완전히 깨달을 수 있도록 분명하게 때려야 한다. 셋째, 사랑의 매를 드는 방법이다. 먼저 부모가 자녀에게 감정적으로 매를 들지 말아야 하며, 매를 들기 전에는 잘못을 지적해주고 벌을 주어야 한다.

아무리 부모라도 어린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부모가 매를 드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랑 표현임을 자녀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왼손으로 벌을 주고 오른손으로 껴안아라.

다. 사랑의 매가 필요한 연령과 시기

1) 사랑의 매는 어릴수록 효과가 있다=정신과 의사인 마이어 교수에 의하면 사랑의 매는 어릴수록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마이어 교수에게는 고집 센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을 두 살 때까지 매로 버릇을 가르친 결과, 세 살 때부터는 아버지가 회초리를 가지러 가는 것만 봐도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 살 이후로는 매가 필요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이미 아이에게 부모에 대한 사랑, 존경, 순종 등 전반적인 태도가 잘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돕슨은 실제 고집 센 아이를 다루려면 15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매를 들기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권한다.

유대인의 탈무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하게 꾸짖어 가르치되, 다 자란 뒤에는 작은 일로 꾸짖지 말라.”  

2) 사랑의 매는 아이가 잘못한 순간 들어야 한다=효과적인 사랑의 매는 언제 들어야 할까? 아이가 잘못했을 당시에 바로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매를 들면 아이가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에게 사랑의 매를 들 때 꼭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항상 선악의 구분에 대한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한 보상과 꾸중을 할 때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만약 자녀가 너무 예쁜 나머지 장난처럼 매를 들면 아이의 버릇을 더 나쁘게 들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랑의 매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효과가 있지만 중학교 이후, 즉 13세 이후에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때는 이미 매로 다스릴 나이가 지난 것이다. 성인으로 진입하는 사춘기 시기의 자녀와는 문제를 대화로 푸는 게 효과적이다.

매를 들어 가르치기보다는 할 수만 있으면 유대인처럼 인내심을 갖고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도록 반복하여 훈련시키기를 권하고 싶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자녀는 성장하여 결혼한 뒤에도 아버지에게서 배운 대로 인내하며 사랑으로 자녀를 교육하게 된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배운 대로 행하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