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고등학교 전경>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 위치한 기숙형 학교인 거창고등학교는 이 지역의 랜드마크나 다름없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방문해 거창고등학교의 인성 교육을 배워갈 만큼, 뚜렷한 교육관을 소신 있게 지켜가고 있는 거창고는 신입생 모집 시 정원의 5배 이상이 지원할 정도로 경쟁률이 높다. 이 때문에 가까운 지역의 학생이 입학하기 힘들어 거창 지역 출신 학생을 정원의 20%로 선발한다.

시골마을에 위치한 작은 학교에 우수한 학생이 많이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교육이 전무한 가운데 학생 스스로 공부하면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거창고만의 특별한 교육에 대해 살펴보았다. 

 

인성교육의 초석을 마련한 전영창 교장

거창고는 1953년 설립돼 6·25 직후의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리 잡았다. 설립 초창기에 학교 재정문제로 폐교 직전까지 가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956년 故 전영창 교장이 부임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영창 교장은 우리나라의 미국 유학 1세대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학교 운영의 기반을 마련했다. 전 교장은 유신시대 군사 교육을 거부하고 5공화국 시절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교사에게 자율권을 주는 등 학교 스스로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또 교복과 조회를 없애고 두발을 자율화했다. 거창고는 전 교장의 교육철학을 토대로 ‘교장은 교사의 자율성’을, ‘교사는 학생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운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전영창 교장이 학생들에게 가르친 ‘직업 선택 십계명’은 거창고의 특별한 직업 교육관으로 남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신앙을 기반으로 한 인성교육

거창고는 인문계 고등학교지만 교육의 1차 목표는 대학 보내기가 아니다. ‘사람 만들기’이다. 기독교 신앙을 통한 정신교육, 가치관 교육을 하고 있는 거창고의 교육이념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구약 성서잠언 1장 7절의 말씀을 기초로 하고, 신약성서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 나오는 ‘빛과 소금’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는 삶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더불어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가치관을 습득하게 하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지향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학교에는 ‘교목’인 목사님이 상주한다. 매주 화요일 1교시에 전체 예배를 하고, 전 학년이 매주 한 시간씩 성경수업을 받는다.

이 외에 절기예배, 신앙집회의 시간이 있다. 신앙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친다.

박치용 교장은 “신앙을 통한 인성교육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조금씩 바뀌어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성장한다”며 거창고 인성교육의 긍정적인 영향을 설명했다.

거창고의 특별한 직업 교육관으로 잘 알려진 ‘직업 선택 십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직업 선택도 성서의 관점에서 이해된 개념으로 가르친다. ‘어떤 꿈은 꿈이고, 어떤 꿈은 꿈이 아닌지, 어떤 길은 가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십계명>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

거창고 학생들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가득하다. 박치용 교장은 “학생들이 공부에 찌들어 있지 않고 얼굴이 밝아 외부 사람이 오면 놀란다”고 귀띔한다. 학생들의 밝은 얼굴은 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대변한다.

박 교장은 “교무실 분위기는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교장이 교사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교사가 하고자 하는 대로 자율권을 주어야 교사도 학생들에게 자율권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거창고는 여느 학교와 다른 문화를 만들고 있다. 야간 자율학습 때는 일일이 인원을 체크하지 않는다. ‘자율성 교육이 곧 인성교육이다’라는 기조 아래 학생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자율권을 최대한 주는 것이다. 또 담임이 학급의 일을 좌지우지 하지 않고, 학생들이 리더를 중심으로 직접 학급의 문제를 해결한다.

“거창고에 오면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 강압에 의해서 공부하는 것보다 자율에 의해서 공부하면 학생들의 창의성도 높아지고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돼 공부 외에 학생들의 생활면에서도 크게 변하게 된다.”

박 교장은 “그 변화를 계기로 학생은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게 되고, 학교는 학생의 그러한 성장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개인의 가치를 존중해 자율적으로 발전하도록 하는 거창고의 교육 정신은 학부모들에게 학교에 대한 신뢰를 높여 주었고, 학생에게도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했다.

거창고의 특별한 수업 방식

거창고 역시 여느 인문계 고등학교처럼 대학 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사교육이 어려운 시골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처럼 학원을 갈 수 없기 때문에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학생이 공부하다가안 풀리는 문제가 있을 때는 질문지를 만들어서 질문지함에 넣으면 정규 수업 이후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교사들 10여 명이 학교에 나와 학생과 일대일 수업을 하며 문제를 풀어준다.

정규수업의 영어와 수학 같은 학력차가 심한 과목에서는 능력별로 이동식 수업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교육의 도움 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공부하도록 한다. 소수의 학생이라도 심화 학습이 필요한 경우 신청을 받아 소인수 과목을 편성한다.

또 진학과 관련된 교과 동아리를 통해서 자율적으로 학습하고, 비(非)교과 동아리를 통해서 각자의 취미와 소질을 계발한다. 그 외에 과제 수행, 발표 수업, 그룹별 토론 수업 등을 일정 주기를 두고 반복해 논술전형 및 학생부종합 전형에 대비한다.

초청강연과 문학기행, 역사기행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통해서는 글로벌 리더의 소양을 가지게 하고, 국제화 교육의 일환으로 유네스코협동학교 프로그램(ASP-net)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다른 나라의 사회, 경제, 문화를 배우고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갖게 한다.

또 다양한 독서 활동을 통해서 인격형성을 도모하고 있다. 권장 도서를 선정하여 학생이 월 1회 이상 독후감을 쓰고, 독서 교육 종합 시스템에 올리면, 담임은 학생의 독후감을 읽고 승인하여 생활기록부의 ‘독서 활동’란에 반영한다.

<거창고 풍물부>

스스로 만드는 예술제

학교의 모든 행사도 교사가 관여하지 않고, 학생들이 선배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학생들 스스로 기획한다. 학교는 행사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고 교사는 참관만 한다.

‘시행착오’도 이 학교 교육의 한 방법으로, 학교는 행사에 대한 모든 일을 학생에게 맡긴다. 예술제, 야영 활동, 동아리 활동, 불우이웃돕기 바자회 등을 학생회가 주체가 되어 기획에서부터 진행, 결산까지 직접 한다.

행사에서 학생들이 공을 차다가 다쳤거나 분쟁이 일어나면 선생님보다 학생회가 먼저 관여를 한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서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정서교육’이다. 거창고는 정서교육을 지식교육과 동일하게 중요시한다.

학생들이 예술제 등의 행사를 진행하며 행복을 느끼고, 공동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면서 자신감을 가지도록 한다. 스스로 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생이 발전해 가는 과정이 거창고의 ‘정서교육’이자 ‘인성교육’이다.

이 체험들은 대학입시와는 거리가 멀지만 학생들이 수업 외의 활동을 통해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서 그리고 인격과 지식이 고르게 성장하도록 돕는다.

거창고는 지금까지 전인 교육의 기틀을 마련하고, 인성 교육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자율적으로 공부하고, 자율적으로 행사에 참여하는 학교의 전통 속에서 교사와 학생은 행복한 교실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학생의 성적부진을 ‘실패’로 인식하지 않고, 학생 각자가 일등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개성을 찾아주는 교육, 개인의 특성을 살려 자신의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개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교육을 지향한다.

“경청은 바로 소통이고 리더십의 근간이다. 수평적 리더십을 통해 학생들이 따뜻하면서도 원칙이 있는 감성의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박치용 교장은 학생들에게 겸손과 배려, 그리고 경청을 강조한다. 작은 도시의 크지 않은 학교에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여 여느 학교와는 다르게 자율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거창고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학교라는 성과로 전인 교육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